지난번에 '도시락'에 얽힌 음식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러시아 음식의 사연을 소개할까 한다.
1년전 '루'와 내가 처음 데이트를 시작했을 즈음, '루'에게 한국음식은 몹시 생경한 음식이었고, 한식당에서 몇가지 좋아하는 메뉴는 생겼으되, 김치는 아직도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김치와 조금은 익숙해져가던 어느 날,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Ko, 자기 코리안 캐롯은 안 좋아해?”
“코리안 캐롯이 모야?
난 뭔지 몰겠는데..?”
“뭥미$%&^??! 코리언이 그걸 왜 못 먹어봤어??”
“못 먹어본게 아니라 그게 뭔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래서 또 각자 영문도 모르는채 인터넷 검색이 시작되었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러시아에 한국이민은 18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한반도에 가까운 지역
(극동지역)에서부터 정착하기 시작했을터인데,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거의 한인 전체 인구에 해당되는 20만명 가까이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토양이 틀린 그 지역에서 배추나 갖가지 김치 재료를 구해서 김치를 만든다는 건 꿈에 가까운 얘기였고,
그나마 손쉽게 구해지는 재료를 가지고 김치대용 요리를 만들어낸게 Korean Carrot인 셈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그리 다양치 않은 러시아인의 야채 식단에 색다른 풍미를 더하며, 그들의 음식으로 정착하게 된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보잡 '코리언 캐롯'이라는 음식이 러시아에서 인기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듯이, 러시안인들은 반대로, 한국인들이 'Korean
Carrot'이라는 음식을 모른다는 사실에 거의 경악을 한다. “코리아”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 요리가 한국의 대표음식일거라는 생각을 너무나 당연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글을 보았더니, 피자를 즐겨먹던 사람이 이태리를 갔더니 막상 아무도 피자를 모르는 황당한 상황과 비교해보라고 했는데, 걸맞는 비교이다^^)
그 이후로 ‘루’는 ‘코리언 캐롯’요리를 한번 해줄거라고 벼르고 있는데,
그날이 올때까지 그 맛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을 터이다.
채를 쓴 당근에 마늘, 향채, 후추, 식초, 설탕과 야채오일을 섞어서 양념을 한다는 이 요리가 척박한 중앙아시아 거주 한인들의 손에서 태어나고, 현대 한 평범한 한국인의 식단에 오르기까지 근 7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블로그 오픈 축하해요!
ReplyDelete재미난 얘기, 좋은 정보 많이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