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던 시절, 저와 한달만 짝을 하면 재즈팬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들려줄 곡을 많이 소장하고 있고, 곡과 아티스트에 얽힌 무궁무진한 스토리로 재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이죠.
따라서, '루'가 점점 더 재즈에 흥미를 느껴가는 건 예견된 일이라 하겠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뜻밖에도 '루'가 재즈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러가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영화 "Whiplash"
재즈드러머로서의 성공을 꿈꾸는 음악학도와 그의 꿈에 방해자이기도 하고 조력자이기도 한 학교 빅밴드 지휘자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영화는 모든 이에게 어필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음악, 특히 재즈에 대한 애정 혹은 열정을 가진 분들에게는 더욱 깊은 잔상을 남길 것 같습니다.
재즈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Discipline (도저히 잘 번역이 안되는 단어중 하나죠...) 을 가진 지휘자가 한 젊은 드러머의 천재성을 보고, 자기 방식대로 엄청난 푸시를 가하고, 그 결과 드러머는 "피와 땀과 눈물" 플러스 온갖 희생과 자기 극복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하는데....
평도 엄청 좋은 이 영화에 저는 사실 헛점도 있다고 봅니다. 특히 지휘자의 캐릭터가 더 잘 그려질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여기서 '잘'이라 함은 '더 좋은' 캐릭터와 '더 잘 정의된' 캐릭터를 같이 의미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정말 좋은 음악 영화를 보았네요^^
영화에서 엄청 필을 받은 저희는 집에 돌아와서 원조(?) 재즈 뮤지션의 음악을 감상하며 그 음악들에 얽힌 이야기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눠봅니다.
John Coltrane의 'A Love Supreme' 앨범. 존 콜트레인이 레코딩 작업중 신의 존재와 실제로 맞닥뜨렸다고 선언한 앨범이죠.
피아니스트 Keith Jarrett의 Live At The Blue Note Club 6장짜리 앨범. 제가 1990년대 최고의 재즈앨범이라고 선언한 앨범입니다. (그 이후 재즈비평가들도 그런 평을 한게 많이 보이더군요^^)
손으로 치는 드럼, 타악기스런 피아노 연주로 인디언 부족과 '사막의 태양'을 음악적으로 너무 멋지게 묘사한 Dessert Sun (from 'At the Blue Note Club' Album)
Whiplash 영화에서 피눈물 나는 연습 때문에 생각난 Sonny Rollins. 핫한 색소포니스트로 각광 받던 쏘니 롤린스는 어느날 떠오르는 신인 존 콜트레인의 연주를 직접 들은 직후 3년간 은퇴/잠적 해 버립니다. 전설처럼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잠적했던 그 시기에 뉴욕의 브릿지 밑에서 혼자 연주/연습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하네요. 콜트레인의 충격으로 또 갈고 닦았단 얘기이죠.
그런 소니 롤린스가 그보다 한세대 위인 Coleman Hawkins 와 연주한 곡중에 Lover Man이란 곡이 있습니다. Lover Man은 재즈 스탠다드 곡이므로 수많은 뮤지션들이 연주를 했지만, 이 버젼은 콜만 호킨스의 감싸 안는듯한 둥근 톤과 연주스타일이 마치 아빠가 아들을 토닥이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거기에 비해 젊고 거침없고 반항적인 듯한 쏘니 롤린스의 스타일이 대비되면서 색소폰 연주의 비교 감상에 아주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천재 재즈 뮤지션을 얘기하다보니 나온 Jaco Pastorius. 현대 일렉트릭 재즈 베이스 스타일의 뿌리라고 보면 되는 사람이죠.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짧은 일대기를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는데, 요즘 시쳇말로 '똘끼가 있는' 천재였고, 그 천재적 광기와 술이 결국은 몰락과 요절의 길로 끌고간 뮤지션입니다. 더 이상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시절, 한어깨에는 베이스 기타를, 한 팔에는 농구공을 끼고 플로리다의 술집을 전전하며 망가진 생활을 하다가 싸구려 술집의 기도와 사소한 시비끝에 어처구니 없이 맞아 죽은 천재입니다.
음악을 걸어 놓고, 이런 저런 재즈에 얽힌 얘기를 하다보면 정말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발동이 심하게(?) 걸린 '코'와 '루'는 방콕의 재즈 바의 대명사이자 자존심인 '색소폰 (Saxophone)' 으로 출동하게 됩니다. 1년전 '루'가 처음 색소폰을 방문 했을때는 뻘쭘하다시피 '루'가 재미 없어 하는 분위기여서 1시간도 못 견디고 일어났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과연 변할 수 있을까요....?
("방콕 재즈바의 자존심 색소폰, 그리고 Jack Lee" 블로그 글에서 계속...)
여기에 소개한 재즈곡들은 사실 그리 간단히 들을만한 곡들은 아닙니다. 러브 수프림은 연중에 날 한번 잡아야 들을까말까이고, 키쓰 재럿의 데저트 썬도 한번씩 맘잡고 감상하는 그런 곡들이죠. 평상시에는 좀 더 무심히 들어도 될만한 곡들로 충분하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이런 곡들을 들으면 카타르시스가 됨을 느낍니다. 혹시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곡, 혹은 재즈음악 스타일을 알려주면 거기에 매치되는 여러 아티스트들을 소개해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ReplyDelete재즈 참 가까이 하기엔 참 어려운 종목중 하나로 생각 됩니다 제겐 차라리 알앤비가 좀 쉽게 들리고 가까이 가기도 편합니다 1990년대 후반 재즈는 도대체 섹스폰 힝가링이나 스라나 스타카토 포지션도 이해하기 참 난해해서 안 들은지 꽤 오래 됐습니다 한국엔 콜트레인 원판 LP도 많아서 린12에 걸어서 듣곤 했었습니다 아주 좋은 취미를 가지셨네요.. 부럽습니다^^
ReplyDelete제가 보기엔 오히려 박재일님의 재즈/음악 내공이 보통이 아니신거 같습니다. 그 정도 음악을 들으셨으면 이해하시겠지만, 음악을 깊이/많이 듣다보면 사실 장르에 대한 선호도 자체가 희석이 되죠. 저도 알앤비를 포함한 흑인음악을 무척 좋아하고, 가요도 편식을 해서 그렇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많답니다. LP 말씀하시니까 아련한 추억들이 너무 많이 떠오르네요. 언제 함 뵙고, 골프뿐 아니라 음악 얘기 실컷 나눠보시죠!
Delete천만에 말씀 이십니다 제 경험으로 볼때 고루님께서 악기를 다뤄본 솜씨가 있어야 장르에 대한 깊이와 맛을 압니다 듣는거로만 깊이와 평론 하긴 다소 무리라 봅니다 고로 내공은 저보다 훨씬 많으셔요 인연 닿으면 함 뵙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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